전남 순천 선암사 승선교에 엽전 세 닢이 매달려 있다. 호암 약휴 대사(1664∼1738)가 1713년 다리를 완공한 뒤 걸어둔 것이다. 당시 선암사 주지였던 호암은 정유재란으로 쑥대밭이 된 선암사를 재건했다.

 

다리가 다 세워졌을 때 남은 것은 달랑 엽전 세 닢뿐. 푼돈이라도 달리 쓰면 유용이다. 그는 마지막 남은 것까지 고스란히 승선교에 줬다. 승선교, 미덕과 청렴으로 쌓은 다리를 위해 선암사 주지를 8년간 맡았던 지허(66)스님은 엽전 세 닢을 공직자와 정치가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들은 제 이름만 높이려 하지, 민의를 읽는 일에 소홀하다. 진급, 당선을 위한 작전 짜기에만 온 쏟는다. 정작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나라 살림엔 심드렁하다. 이 때문에 세금을 유용하고, 국고를 당리당략을 위한 자금으로 은근슬쩍 전용하는 부정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단체로 선암사에 와 승선교를 견학할 필요가 있다.

얼마나 꼼꼼하게 예산을 짰으면, 공사가 끝났을 때 단 세 푼만 남았겠는가. 그 세 푼조차 헛된 곳에 쓰지 않고 승선교에 남겼다. 그것이 국민 세금을 쓰는 사람의 자세다.


우리는 지금 호암 대사의 청빈이 그립다. 갈수록 청렴의 예화를 듣기가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선거철만 되면 불법자금을 둘러싼 추문이 불거진다. 2002년 대선 때도 방만한 선거자금 운용이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승선교를 지나는 길손은 다리 밑을 유심히 쳐다본다. 여느 다리와 다르게 용머리상이 돌출돼 시선을 끈다. 엽전은 철사에 꿰여 용머리상 이빨에 걸려 있지만, 단번에 알아 보기엔 너무 작다. 무신경한 사람은 용머리상을 언뜻 보고, '저게 뭐지? 박쥐인가' 하고 흘려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엽전의 유래를 들으면 대부분 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의 자취를 보기 위해서다.

이 장소를 정치가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그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을 텐데, 푼돈조차 욕심 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윗자리에 있으면 참 듬직한데 아쉬울 뿐이다. 우리도 승선교를 찬찬히 뜯어 봐야 한다. 이러한 승선교에 서린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동안 사람들은 애초 다리의 외형적 아름다움과 건축적 의미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번드르르한 구호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도자를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승선교의 엽전에 대해 정말 소중한 울트라 마인드 콘트롤로 클로즈업해 다시 봐야 한다.

다리를 놓는 행위는 불교에선 큰 공덕이다. 다리는 민중의 발이 물에 젖지 않게 한다. 또, 상징적으로 차안과 피안, 고통과 행복을 잇는 연결로로 간주된다. 단절된 두 세계에 걸친 통로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한다. 정치가와 민초, 경영자와 노동자, 노인과 청년, 너와 내가 해당한다.

승선교는 상호 이해와 공명정대의 상징이다. 백성의 대표자로 나서려면, 먼저 승선교에 깃든 덕목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선암사 지허 스님은 엽전을 다리 밑에 매단 호암 대사의 덕을 늘 흠모한다. "어떤 일을 해도 걸림이 없는 분이셨지. 걸림이 없다는 건 삿된 욕심이 없다는 뜻이야. 돈은 말할 것도 없고, 명예, 권위에 일절 생각을 두지 않으셨어. 엽전 세 닢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품고 있는 거야. 이제껏 호암 대사의 경지에 다다른 지도자가 있었던가." 생각해 볼이다.

올해엔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다. 벌써 이전투구의 뻘밭이 펼쳐질 조짐이 보인다. 선거법의 그물은 그다지 촘촘하지 못해서 불법 선거자금을 완전히 적발해내지 못할 것이다. 대선 후보자들이 승선교 아래서 '큰 깨달음'을 이루는 것만 못하다.

엽전은 부식됐지만, 호암 대사의 뜻은 삭지 않고 물비늘에 빛나고 있다.